냉이꽃
원춘옥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조용하던 골목길 입구 공터는 늘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핀 따먹기,구슬치기, 자치기.고무줄놀이,십자가이생,비석치기...잘 굽혀지지 않는 언 손을 호호불며 추운것도 모르고 놀이에 빠져버릴 때 쯤이면 온동네를 '그대로 멈춰라'로 만들어 버리는 큰 괴물이 등장한다. 골목어귀에 앉아 튀밥을 만드시는 아저씨는 장작불에 기계를 30분 정도 굽고난 후, 긴 철망주머니를 마스크처럼 씌우고 나면 아저씨의 '펑이요'라는 큰 목소리와 동시에 귀를 막았던 아이들은 기계 주위에 몰려들고 길가던 어른들도 잠시 멈춰서서 이런 광경들을 지켜보면서 입가엔 하얀 미소가 가득하다.튀밥은 주인에게 돌아가고 철망안에 남은 튀밥을 동네 꼬마들이 달라붙어 흙이 묻고 코를 훔친 손으로 마구 입에 털어넣는다. 입 언저리는 튀밥들이 달라붙어 산자과자처럼 되어버리고 아이들이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마구 웃으면 튀밥들은 다시 튀어나와 언 땅에 이리저리 흩어지고 튀밥아저씨는 그런 아이들을 묵인한 체 다음 작업을 한다. 우리는 잔 튀밥에 양이 차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조르고 어머니는 못이기는 척 하시며 아끼시던 쌀을 한 되 가지고 나오시거나 솥에 눌었던 누룽지를 잘 말려 보관했던 것, 옥수수 낱알을 말려두었던 것, 설에 남았던 가래떡 말려 두었던것을 찾아 맡겨준다. 튀밥아저씨가 오시는 날이면 온 동네는 골목길은 하루종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흰 튀밥이 주는 작은 행복함에 들떠 있다.튀밥을 튀겨서 주변의 사람들과 일차로 조금씩 나눠주고 천 자루에 하나 가득 담아온 튀밥은 우리의 긴 겨울 간식거리였다. 한 양푼씩 퍼다가 먹다보면 배부른 자루가 며칠을 가지않아 주저앉아 버린다.지금처럼 간식거리가 많지 않은 때이라서 금방 동이난다.
겨우내 아이들이 밟고 놀았던 공터의 숭숭뚫린 언 땅에 햇볕이 녹아들면 냉이들이 기지개를 핀다.가난한 겨울의 끝에 먹거리로 우리의 밥상에 올랐던 냉이와 고단한 시절에 우리 부모님의 희망이었던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튀밥이 오랜 기억의 저 편에서 살랑 살랑 냉이꽃처럼 하얗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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