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문학론]- 고전의 가치와 북한 문학론

여람 2011. 7. 14. 07:57

 

 

고전의 가치와 북한 문학론  원춘옥

 

 

- 목 차 -

 

Ⅰ. 서론

 

 

Ⅱ. 고전의 정의와 가치

 

 

Ⅲ. 문장파의 형성

 

 

.문장파의 주요인물

 

   1. 이병기

   2. 정지용

   3. 이태준

 

. 북한문학의 ‘조선민족 제일주의’ 

 

Ⅵ. 결론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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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30년대 후반 문단에서 고전문학의 탐구와 전통의 계승을 위한 문제를 둘러싸고 펼쳐진 논의들은 충분한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고전부흥 론이 산발적 피상적인 것에 그친 것은 일제하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역사적, 사회적 상황의 악화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과거 속에서 정신적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것과 무관하다고 비판 받을 수도 있으나, 한국고전문학에 대한 노력과 관심이 꾸준히 지속되었다.

이러한 전통주의는 1939년 2월 창간된문장」의 출현으로 표면화되기에 이른다. 「문장」지는 다른 문예지와 달리 전문성을 갖추고 순수 문예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출발하였으나 언론 출판이 극도로 악화된 시기에 발행되어 결국 식민지의 강압으로 2년 2개월 만에 폐간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문장」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한 문인들은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대표적인 문인으로 가람 이병기, 상허 이태준 그리고 정지용을 들 수 있다.

 본고에서는 고전의 정의와 가치에 대해 정리하여 보고, 「문장」파 문인들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이들이 추구했던 고전전통주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1980년대 말 북한의 문학을 살펴보면서 남북 문학의 전통적 가치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한다.

 

 

Ⅱ. 고전의 정의와 가치

 

 

 고전의 정의는 선인들이 남긴 오래된 작품을 뜻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훌륭하다고 평가를 받은 작품을 뜻한다. 고전의 가치는 그 당시의 시대상황 가치관 생활방식이 그대로 담겨져 있어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기 때문에 고전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일깨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전통이 문학론에서 새삼스럽게 문제 된 것은 20세기 들어선 이후부터의 일이지만, 그러나 시야를 보다 넓힐 경우 우리는 전체 문학사가 전통과의 관련 없이는 이해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전통이 과거에 대한 의식을 뜻하는데, 한편 모든 문학 작품은 싫든 좋든 과거에 대한 의식 없이 씌어 질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을 표상하는 언어 자체가 과거의 유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각적이던 무 자각적이든 전체 세계 문학사는 전통이라는 맥락 위에서 전개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실제로 역사상 전통주의의 대두는 19세기 낭만주의와 20세기 실험 문학에 대한 하나의 충격이며 안티테제라 할 수 있다. 전통의 옹호와 전통에 대한 반 옹호, 전통에 대한 반역은 문예사조 상 각각(넓은 의미의)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로 대응될 수 있다.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대체로 고전주의 계열의 문학이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 예술 작업의 객관성, 개성의 추방, 문학적 양식과 관습에 대한 집착 등이 특징을 지닌 데 비해 낭만주의 문학은 이와 반대로 과거와 현재의 불연속성, 예술작업의 주관성, 개성의 존중, 문학적 양식과 관습의 타파 등의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성격들은 전통 옹호론에 깊이 밀착해 있고 낭만주의가 이들로부터 소원해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실제로 문학 사가들에 의하면 전통주의는 고전주의의 본질의 하나이다.

 고전이란 과거의 작품이지만 현대에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찍 민족정신의 뿌리에 작용했을 고전작품들은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 몇 백 년 동안 서로 경쟁하면서 전해 내려오다가 사람들에 의해 선택되고 뽑히고 가려져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직 선택되고 검증되지 않은 현대작품들보다는 어떤 뜻에서는 더 가치가 있고 이미 인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대에 와서도 몇 십 년 동안 꾸준히 읽히고 있는, 이른바 ‘스터디셀러’ 라고 하는 작품들도 잘 따져보면 그 주제가 고전의 어느 작품과건 맥이 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듯 고전은 흐르는 시간과는 관계없이 우리에게 영원하고도 보편적인 과제를 새롭게 던져주는 것이 고전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관사편(觀射篇)에 博古知今(박고지금: 널리 옛날을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됨)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고전을 익히고 하는 진정한 뜻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Ⅲ. 문장파의 형성

 

 

 1939년 2월 문학 종합지인 「문장(文章)」과 관련하여 편집 및 활동한 대표적인 문인으로는 정지용, 이병기, 이태준, 김용준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문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들로서 전통 지향적 정신과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던 사람들로 ‘ 문장파 ’ 라고 부른다.

 1930년대 말 한국고전문학 유산들의 탐구와 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난 고전부흥론은 커다란 발전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민족문화 말상정책 속에서도 한국고전문학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졌고 , 가치 있는 전통을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이것이 표면화 된 것이「문장(文章)」이다.「문장(文章)」은 『한중록』,『호질』,『古時調選』,『봉산가면극 각본』,『 춘향전이본집』,『인현왕후전』,『도강록』등 민족고전을 발굴하는 한편, 유능한 신인을 발굴하여 배출하였다.

 이병기의 추천으로 조남령, 김상옥, 이호우 등을 배출하였으며 시는 정지용, 소설에는 이태준, 정지용에 의해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곽하신 등의 신인들이「문장」을 통해 등장하게 된다.「문장(文章)」의 편집진은 고전문학의 유산에 강한 애착을 가졌던 것에 병행하여 한국학자들의 학습활동에도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문장(文章)」은 명색이 순수문예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학자들에게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문장」지에 실린 한국학 관련 논문들은 편수만 따져도 문학평론에 버금가는 분량이다. 그것들의 주종을 이룬 것은 국문학, 국어학, 미술사 분야의 논문들이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면 이희승의『조선문학연구초』(제1호-제10호), 조윤제의 『조선소설사 개요』(제19호),『설화문학고』(제23호), 양주동의 『詞腦歌譯註序說』(제22호),국어학 분야에서 鄭寅承의 『古本訓民正音의 硏究』(제22호), 崔鉉培의 『한글의 비교연구』(26호) 미술상 분야에서 김용준의 『李朝人物畵』(제1호) 등이다. 문장 편집에 나타난 한국학 후원의 자세는 그것의 문학적 미학적 취향이 지닌 전통지향성의 강도를 짐작케 한다.

 

 

.문장파의 주요인물

 

 

1. 가람 이병기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는 고문헌(古文獻) 수집과 시조연구에 몰두하였으며, 1925년 시조 ‘한강(漢江)을 지나며’를 조선 문단(朝鮮文壇)에 발표하면서 시조시인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한편 한국고전(韓國古典)에 대한 주석과 연구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26년시조와 그 연구」,「시조란 무엇인가,등을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1939년에는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을 발간하였다.「문장(文章」지 창간호부터 한중록주해(恨中錄註解)를 발표하는 등 고전연구에 힘을 쏟았다. 시조시인으로서 현대적인 시풍을 확립하였고, 국문학자로서는 수많은 고전을 발굴하고 주해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

 「문장」에 깊이 관여한 사람들 중에서 과거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조예에 있어서나 그것의 계승을 휘한 노력의 연륜에 있어서 이병기를 능가할 만한 사람은 없었고 그는 이태준의 정성과 구청에 응하여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이병기의 도움이 없었다면 문장의 전통주의가 실체화되기란 극히 어려웠다. 근대시조 정립을 위한 그의 필생의 작업 역시 그 시발점을 따지면 2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것이 절정에 도달한 것은 문장과의 인연 속에서였다. 그의 시조작품 중에서 절품으로 인정되고 있는 난초 연작을 비롯한 원숙한 경지의 작품들이 그 잡지에 발표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시조도 20년을 결산한 가람시조집문장사를 통해 나왔다.

 국학자인 이병기가 당대 30년대 중. 후반에 있어 조선주의에 바탕으로 한 전통문화 부흥운동과 관련하여 그 여러 문화업적을문장에 수용하고 그러한 정신적 이념을 다시 한국문화 내지 문학창조에 한 노선으로 정립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조선조 선비들의 이념의 가장 잘 표방된 시조를 창작하고 현대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창작 및 연구에 힘입어 나름으로의 시조 학을 정립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조 학은 단순히 고시조를 연구데 그치지 않고 현대시의 한 장르로서의 시조를 제시함으로써 창작방법론을 내세우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의 큰 몫의 하나이다. 전통 및 고전의 현대화를 위한 이병기의 노력과 업적-이것은 바로 문장이 전통주의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현대문학의 한 조류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가람은 술과 난초와 고서수집 등을 위해 쏟은 열정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난초에 대한 사랑은 세속적인 것에 매이지 않는 고고함의 정신주의를 표상한다. 이병기는 유교적 전통 속에서 사대부 문인정신을 바탕으로 고결한 멋을 예술화 했다고 할 수 있다.

 

 

 

2. 정지용

 

 

 

 1919년 12월 「서광」창간호에 소설 ‘삼인’을 발표하고, 1925년「학조」창간호에 ‘카페 프랑스’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시를 발표한다. 1930년 「시문학」동인으로 활동하여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되며, 한국 시문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1939년 「문장」지의 추천 위원이 되어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과 박목월, 박두진을 발굴하고 등단시켰다.

 창작에만 주력하고 시론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던 정지용은「문장」을 통해서 비로소 시 비평을 내놓게 된다. 우선 지용은 「시의 옹호」에서 전통 계승론의 비평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것은 상고주의와 전통지향의 성향을 보여 온 「문장」의 편집인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정신적 태도로 보여진다. 그는 교양인의 자세를 강조하면서 시인은 꾀꼬리처럼 생명에서 튀어나오는 발성으로 노래를 불러야 진부하지 않고 자연의 어법에도 충실한 것이라고 하였다.

 정지용 문체의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아마도 고전적 문체의 모방과 활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고전적인 것을 진부로 속단하는 자는 별안간 뛰어드는 야만일 뿐”이며 “우수한 전통이야말로 비약의 발 디딘 곳”이라고 역설했는데 그러한 일종의 전통주의는백록담시편의 방법적 원리 일 뿐 아니라 그의 독자적인 문체 개발의 준칙이기도 하다. 새로운 문학의 창조적 기반으로서 고전 및 전통의 가치를 긍정하는 정지용의 태도는 고전 문장의 어휘와 구문에 현저한 경사를 드러낸 자기류의 문체 개발의 준칙이기도 하다. 새로운 문학의 창조적 기반으로서 고전 및 전통의 가치를 긍정하는 정지용의 태도는 고전 문장의 어휘와 구문에 현저한 경사를 드러낸 자기류의 문체 개발을 통해서 명료하게 표현되고 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 쓴 정지용의 산문은 그 문체와 주제 양면에서 동양-한국의 고전적 전통의 영향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의 산문은 본바탕은 귀족적이면서 아울러 향락적인 성향의 심미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의 특징 가운데는 동양-한국의 고전적 전통에 대한 향수와 숭상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정지용이 이해한 그 고전적 전통에 대한 핵심은 조선시대의 선비계급의 문화, 선비계급이 창조하거나 향유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정지용을 사로잡은 선비문화의 특질은 풍류의 멋과 은일의 정신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정지용의 의고문체에 대해 언급하면서 우리는 그의 내간체 활용이 그를 포함한 문장파의 고전 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확인했는데 선비문화를 대하는 그의 태도 또한 문장파의 문학적 이념에 통합시켜 이해할 수 있다.

 정지용은 처음에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로 1930년대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시를 썼으나, 1930년대 후반부터는 선비의 정신으로 해 전통적인 시 창작에 몰두하였으며,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3. 이태준

 

 

 상허 이태준은 1925년 ‘오몽녀’를 시대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33년 ‘구인회’에 들면서 작품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고, 후에 문장지의 편집인이 되면서문장파의 상고주의 적 성격을 뚜렷이 지니게 된다. 주로 가람 이병기의 영향을 받은 그의 상고주의는 40년대 일제의 억압 정책 등 객관적 상황의 악화로 야기된 고전부흥 론을 문장편집 과정에 적극 수용하는 동기가 된다. 1930년대 말 ‘까마귀(1936)’, ‘복덕방(1937)’, ‘밤길(1940)」’ 등으로 우리 소설 문학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했고, 문장 강화에 나타난 탁월한 미문가로 예술적 정취가 짙은 단편에 능했다.

  이태준은 문장의 편집주간으로서 편집을 주도하고 문인들을 이끌어간 사람이다. 문장파의 정신적 지향이 문학사적 흐름에서 어떤 실체로 자리 잡는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단지 이 잡지의 주간으로서 사업에만 힘쓴 것이 아니다. 그 나름대로 고전문화에 대한 열렬한 관심과 그에게 빚어지는 어떤 에네르기로 당대 새로운 문화 창조의 한 가능성을 타진하는데 주도적이었던 것이다. 황종연이 말대로 실제 문장파의 문학적, 미학적 기획은 그의 개인적인 열망과 의지가 일종의 집단적인 에너지로 증폭된 결과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그가 문자에 연재한 문장 강화를 위시한 일련의 산문들은 ‘문장파’의 문학 및 문학관의 요강을 담은 공식문서로 읽혀질 수 있다.

 편집인이 되면서 문장파의 상고주의적 성격을 뚜렷이 지니게 된다. 주로 가람 이병기의 영향을 받은 그의 상고주의는 40대 일제의 억압 정책 등 객관적 상황의 악화로 야기된 고전부흥론을 문장편집 과정에 적극 수용하는 동기가 된다.

 그의 수필을 읽어본 누구나 고문헌, 고서화, 고도기 등의 골동품을 비롯해서 예로부터 전해지는 각종 물품과 풍속을 음미하는 일이 그의 사사로운 경험의 주종을 이룬다는 것을 안다. 이태준의 신변담이 지니고 있는 여러 특징들 중에서 과거의 유물에 대한 강렬한 집착만큼 그 신변담의 반시대적 고립성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도 없다. 과거의 유물을 즐기고 숭상하는 행위를 가리켜서 이태준은 ‘고완’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했다. 축자적으로 읽으면 ‘옛 것을 가지고 논다’는 뜻이 되는 그 말은 이태준이 그의 상고주의에 내포된 딜레탕티즘의 요소를 스스로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 북한문학의 ‘조선민족 제일주의’

 

 

 1990년 이후 북의 한국사 시대 구분론이 ‘우리 민족 제일주의’ 단군릉 사건 이후 점차 평양과 김일성 북한 학계는 민족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리조실록 』,『동국여지승람』,『증보문헌비고』『동의보감』등을 번역 또는 복각하였고, 『팔만대장경』해체 사업도 추진하였다, 문화와 풍속에 대한 연구로는『 우리나라의 민족유산 간행』 등 성과가 있었다.

구소련의 해체 및 국내 정세의 변화로 북한 체제가 위태로워지자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조선 민족 제일주의’를 들고 나왔다.

 1990년대 이후 간행되기 시작한 『조선문학사』는 북한 문학사가 그동안 고민해 왔던 항일 혁명문학의 위상과 다른 문학과의 관계에 대한 변화된 시각을 보여준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은 우수한 민족적 유산과 전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조명해야 하는 당위성을 대내외적으로 강조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주체 문학론』에서 ‘작가의 출신과 사회생활 경위가 복잡하다 하여도 우리나라 문학예술 발전과 인민의 정서 생활에 이바지한 좋은 작품을 썼다면 그 작가와 작품을 아끼고 대담하게 내세워줘야 한다 ’라고 말하였으며 문학사 집필자들은 이러한 원칙을 적극적으로 서술에 반영하였다.

 북한 문학사의 달라진 면모는 민족 고전 문학예술 유산의 평가와 계승에서 몇 가지 원칙적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서 첫째 인민적이고 진보적인 유산의 비파적인 계승발전 둘째 주체적인 입장의 견지 셋째 역사주의 원칙과 현대성의 원칙의 구현 네 번째 복고주의와 민족허무주의의 배격의 네 가지 원칙을 내세운 데서도 잘

드러난다. 북한 역사학계의 민족주의 사관의 부활과 ‘우리 민족 제일주의’ 의 등장은 문학사 기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결과 금기시했던 작가들인 정지용, 백석, 윤동주, 심훈, 채만식의 부활과 신채호, 한용운 등의 작가에 대한 서술의 강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Ⅵ. 결론

 

 

 

 선비문화를 지향하고 전통성의 계승을 위해 노력한 [문장]파 예술가들은 1930년 후반 일제강점기의 혼란한 시기에서도 우리 고전을 발굴하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병기는 [문장]파의 정신적 존재였고 정지용은 [문장]파의 전통적 정신을 시 창작에 쏟았으며, 이태준은 [문장]의 편집을 맡고 주도해 나간 사람이다.

 식민지 강압에 못 이겨 비록 2년 2개월 만에 폐간 되었지만 문장」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배출된 문인들은 우리문학이 가져야 할 고전적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고, 현대문학의 활로를 찾아 주었다.

 특히 정지용은 북한 문학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1990년대 이후 북한에서는 ‘조선 민족 제일주의’를 표방하고 나서면서 민족 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삼국사기』등을 번역하거나,『팔만대장경』해체 사업을 추진하는 등 민족 문화유산과 전통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하는 당위성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전통과 민족문화 유산은 남북이 공통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박노준외.『현대시의 전통과 창조』. 강남출판문화센터. 1998.

황종연. 「한국문학의 근대와 반근대」.동국대학교 대학원. 1991.

최승호.『한국 현대시와 동양적 생명사상』. 다운샘. 1995.

박태상. 『정지용의 삶과 문학 』.깊은샘. 2010.

도면회 外. 북한의 역사 만들기. 푸른역사. 2003.

김종혁. 북한 문학의 이해 4. 청동거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