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서 한용운 시인을 만나다
4호선 6번 출구 한성대역에서 출발하여 1111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면 삼우장 안내판이 눈에 띈다. 좁은 골목길을 오르면 1970년대의 정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좁다란 골목길을 끼고 옹기 종기 모여있는 집앞에 머문 햇살에 더욱 정겨움을 느낀다.
한 광주리 이고 진 푸르름이 담장을 넘어 짙은 향기를 품는다.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광들이다. 어느 아낙의 정갈한 마음씨가 느껴진다. 옥양목을 하얗게 빨아 풀을 먹여 어머니와 잡아 당겨 접어 다딤이질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 두 번 입고 다시 빨래를 힘들게 하는 엄마의 모습이 무모하게도 생각되었지만, 오래도록 어머니의 향기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곳곳에 스민 당신의 마음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심우장이라고 쓴 철문을 열면 한용운시인의 옛 집이 단아하게 터를 잡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있는 남쪽이 싫어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는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말해주듯 푸르다 못해 검은 소나무가 오랜 세월을 견디고 있다.
심우장의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현판 글씨는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선생의 휘호다. 일창(一滄)이라고 쓴 걸 보면 그렇게도 부른 모양이다. 위창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 서예와 전각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탁월한 감식안으로 서화사(書畵史)를 연구한 학자이기도 하다. 심우장에서 멀지 않은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선생이 오세창 님의 감식과 지도를 받아 우리 문화재를 콜렉션한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위창은 3.1당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일제시대는 물론 해방 이후까지 서화계(書畵界)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은 문화계의 거목이다. 저서에 <槿域書畵徵>이 있다.
| 만해 한용운의 연보 | |
| 1879 |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부 韓應俊의 차남으로 출생, 속명은 貞玉,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 |
| 1884 |
~1897 향리에서 한학 수학 |
| 1892 |
천안 전씨와 결혼 |
| 1899 |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등지를 전전 |
| 1904 |
귀향하여 향리에서 수개월간 머물다 |
| 1905 |
백담사 김연곡 스님에게서 득도. 김영제 스님에 의하여 수계. 이후 이학암 스님으로부터 <기신론>, <능업경>, <원각경> 등을 사사받음 |
| 1908 |
4월경 일본으로 건너가 下關 등지를 순유하고 동경의 曹洞宗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철학을 청강함. 10월경 귀국 |
| 1910 |
<조선불교유신론> 탈고 (1913년 불교서관에서 간행) |
| 1912 |
불교경전 대중화의 일환으로 <불교대전>을 편찬하기 위해 양산 통도사의 고려 대장경을 열람함 |
| 1913 |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 박한영 등과 함께 불교 종무원을 창설. 통도사 불교강사에 취임. <불교대전>을 국한문으로 편찬(1914, 홍법원) |
| 1918 |
월간 교양지 <惟心>을 발간하여 편집인 겸 발행인이 됨 |
| 1919 |
1월경 최린, 현상윤 등과 조선독립에 대해 의논함.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였으며 <공약 3장>을 추가함. 3월 1일 명월관 지점에서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 연설을 하고 투옥됨. 7월 10일 <조선독립의 개요> 제출 |
| 1926 |
시집 <님의 침묵>을 회동서관에서 발행하다 |
| 1927 |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서울지부장에 피선됨 |
| 1931 |
김법린, 최범술 등이 조직한 승려비밀결사인 卍黨의 영수로 추대됨 |
| 1933 |
유숙원과 재혼. 벽산 스님, 방응모, 박광 등의 도움으로 성북동에 尋牛莊을 짓다. 여기에서 소설 <흑풍>, <죽음> 등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
| 1944 |
6월 29일 심우장에서 이적. 미아리에서 화장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다 |
| 1962 |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重章이 수여되다 |
| 1967 |
<용운당 만해 대선사비>가 파고다 공원에 건립됨 |
| 1973 |
<한용운 전집>(전 6권)이 신구문화사에서 간행됨 |
전대법륜 (轉大法輪) 만해 한용운님이 직접 쓴 친필이다.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큰 법의 바퀴를 굴리고 열반(佛出于世하야 轉大法輪)했다는 내용에서 발췌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데 불교 유신론을 내세우던 만해 한용운님이 걸어두고 마음의 새기고자 하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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