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넓은 집에서
원춘옥
마당을 들어서자 야생화와 어우러진 돌절구와 갖가지 꽃들은 아무렇게나 놓인듯하나
서로 어우러져 소박한 멋을 자아내고 봉당과 집안 가득 채운 옛 물건들은 편안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곳곳에 놓인 생활용품과 서적들 그리고 평거 김선기님의 서예작품들이 한층 운치를 더해 주었습니다.
평소에는 본체 뒤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품에 열중하시는데 오늘은 사모님이 안계셔서
손님들의 식사를 도우러 안채에 나오시게 되어 자세한 집안의 내력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이 고택은 100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 아니라,
예전에 옥천 여자중고등학교로 사용되었고, 육영수 여사께서도 교편을 잡은 적이 있는 학교인데,
평거 선생님께서 어렵게 구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 목적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자 구입하게 되었는데
문이 많아 적합하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용도로 사용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의 스승님을 잘알고 계신 덕분에 뒷채까지 엿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살던 집까지 날리며 마련한 각종 생활용품과 서적들은
그 분이 얼마나 많은 애정과 노력을 가지고 물건들을 수집하고 박물관까지 하려고 했는지
작업실을 둘러보니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안채에 진열해 놓았었는데 탐을 내는 분들이 하나씩 가져가는 일이 자주 일어나
지금은 내놓지는 않고 소장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당신이 어렸을적 부터 쓰시던 종이 하나 물건하나 함부로 하지 않고 다 가지고 계셨습니다.
놋수저, 인두, 동그란 안경 바늘집 등. 그리고 당신의 집에 걸었던 문패와 병역기록,
또 그리 오래지 않은 핸드폰까지...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건들을 보며
한 개인의 기록도 역사의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독학으로 서예를 시작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였다고 말하시며
바라보시는 벽엔 어린시절에 쓰던 작은 붓과
성인이 되면서 사용하던 붓들이 정연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주인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물건조차 버리지 못하는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리라...
남도 또한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대했으리라...
문학기행 중에 일행의 틈을 잠시 벗어나 들른
평거 김선기 님의 작업실을 나오며 많은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진열장을 가득 메운 옛 물건들이 백화점의 명품들이었다면
이렇게 넉넉한 마음으로 문을 나설 수 있었을까.
아무렇게나 돋아난 풀들과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정겹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
빗속의 여행이 즐겁고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은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서로를 감싸는 동인들의 말간 얼굴들이 있었음이리라.
마당 넓은 집 안채
마당 넓은 집 뒷뜰
서예가 평거 김선기님의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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