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인출기
원춘옥
언제부턴가 커피전문점이 은행처럼 많아졌어요
기분에 따라 향기를 출금할 수 있다고
상품을 걸고 오가는 발길을 붙잡네요
그 옆엔 거래한 흔적들이 키를 맞춰 서 있어요
진한 향기가 당길 때는 아메리카노를 출금하고
가벼운 수다가 필요하면 카페라테 통장을 이용해요
가끔 이자처럼 달곰한 포인트로
마키아토를 마시고 싶을 때도 있어요
횟수가 쌓이면 덤으로 주는 카드를 통장처럼 모시며
부지런히 문턱을 넘는 사람도 많아요
아침을 일찍 대출한 사람은 밥이 아닌 향기로 배를 채우고
밥공기보다 큰 잔을 들고 일터로 가요
열 잔을 마셔도 갈증을 느끼는 이들
수수료처럼 빠져나간 향기가 거래내용으로 쌓여요
바리스타는 갈수록 다양하고 까다로운 요구를 맞추느라
따끈하고 차가운 것들을 섞어서 은행원처럼 반갑게 나를 맞아줘요
하지만 길거리엔 향기전문점이 넘쳐 적자로 문을 닫기도 해요
마타리, 산국, 쑥부쟁이 등
생각만 해도 금세 환한 웃음이 자동이체 되는 커피
오늘도 하루를 따끈하게 데워 줄, 한 잔의 향기를 찾고 있어요
점심을 마친 샐러리맨들
인스턴트 향기 한잔에 빨대를 꽂고 삼삼오오 몰려다녀요
2013 미래시학 초대시 발표
2015 동작문학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