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쉼표
원춘옥
주홍빛 입술들
담장 아래 또 한 번 꽃을 피웠다
빛이 다 빠지기 전에 뛰어내린
그 사연을 입 속에 가득 머금고 있다
언제였을까
내 기억 속으로 들어오던 날
자잘한 햇살을 뭉치고 잎을 덧대어
촘촘한 그늘을 만들었다
담장을 출렁거리던 날들
가지 끝에 매달던 그 소리들은
가던 길을 되돌아 쉼표로 남아있다
척추가 없는 저 꽃은
누군가의 허리를 붙잡고 올라야만 했다
타고 오르다 숨이 차 바닥으로 내려온 꽃들
분주한 발을 쉬고 있다
나도 이렇게 쉼표를 찍고 싶었다
젊은 날 쉼표를 찍지 못하고
이곳까지 흘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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