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담詩談

하이쿠 시 모음집

여람 2019. 5. 26. 14:06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모리다케-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미안하네, 나방이여

난 너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불을 끄는 수밖에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나비 한 마리 돌 위에 앉아 졸고 있다

어쩌면 너의 슬픈 인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


시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달팽이, 뿔 하나는 길고

뿔 하나는 짧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돌아눕고 싶으니

자리 좀 비켜 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새해의 첫날,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그냥 인간일 뿐


시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소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높은 스님께서

가을 들판에서

똥 누고 계신다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불을 피우게

그러면 내가 멋진 걸 보여 줄 테니,

눈뭉치!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어부의 오두막

바구니에 담긴 새우들 속에

귀뚜라미 몇 마리!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우네


소세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목욕할 물을

버릴 곳이 없다

온통 벌레들 울음소리


오니츠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올빼미여,

얼굴 좀 펴게나

이건 봄비가 아닌가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팽이 얼굴을 자세히 보니

너도

부처를 닮았구나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첫눈 위에

오줌을 눈 자는

대체 누구인가?


기가쿠-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번개에

한 순간 드러나는

마른 강바닥!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꺾어도 후회가 되고

꺾지 않아도 후회가 되는

제비꽃


나오조-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어서 나와, 반딧불아

난 방문을 잠그고

외출할 거야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두 그루의 매화, 얼마나 보기 좋은가

하나는 일찍 피고

하나는 늦게 피고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파리가 있고

부처가 있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내가 경전을 읽고 있는 사이

나팔꽃은

최선을 다해 피었구나


쿄로쿠-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빛이 너무 밝아

재떨이를 비울

어둔 구석이 없다


후교쿠-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밤은 길고

나는 누워서

천년 후를 생각하네


시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밀물에

발끝으로 서 있는

나비!


치요니-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이니,

눈사람아?


소세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못통 속의 못들

모두가 운 좋게

굽어 있다


호사이-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천둥 번개가 쳐도

나는 젓가락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뻐꾸기가 울 때는...


무초-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나는 외출하니

맘 놓고 사랑을 나누게나

파리여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오늘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나이가

일흔 두셋쯤 되는


쇼우-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낮에는 모기들을

부처님이

등 뒤에 숨겨 주고 있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승려와 파리와

모기가

내 앞을 지나갔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국화를 기르는 사람들,

당신들은

국화의 노예들이오!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봄날, 내 오두막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있다


소도-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오래된 연못

개구리

풍덩!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논 주인이

허수아비 안부를 물으러

논에 나갔다 돌아오네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특별한 재주가 없으니

난 잠이나 잘란다

이 시끄러운 새들아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잠들지 않으면

더욱 춥다


시코-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반딧불이 반짝이며 날아가자

저길 봐하고 소리칠 뻔했다

나 혼자인데도


다이기-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무더운 날에

나는 마음을 정했다

승려가 되기로


토세이-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 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나비가 사라지자

비로소 내 혼이

내게로 돌아왔다


와후-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지금부터는

모든 것이 남는 것이다

저 하늘까지도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타다토모-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연꽃 잎사귀에 소변을 보니

사리가

알알이 맺히네


시코-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뚱뚱하게 살찐 중 하나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온다

기도문을 외면서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구경 하는 사람들에게

구름이 잠시

쉴 틈을 주네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새벽이 밝아오면

반딧불도

한낱 벌레일 뿐!


아온-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벼룩을 눌러 죽이며

입으로는 말하네

나무아미타불!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저무는 가을,

거지가 내 옷을

오랫동안 쳐다보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반딧불 하나가

내 소매 위로 기어오른다

그래, 나는 풀잎이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언 붓을 녹이려다

등잔에

붓 끝을 태웠다


타이로-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재주가 없으니

죄 지은 것 또한 없다

어느 겨울날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눈이 하나뿐인 사람이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네


호사이-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미쳐 버렸네


시메이-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첫눈을 보고 나서

얼굴을

씻었네


에츠진-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새벽에 핀 이꽃들

나는 내가 보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이

신의 얼굴을 보았다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사립문에

자물쇠 대신

달팽이를 얹어 놓았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반딧불을 쫓는 이들에게

반딧불이

불을 비춰 주네


오에마루-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대문 앞에 난

단정한 노란 구멍,

누가 눈 위에 오줌을 누었지?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이 동쪽으로 옮겨가자

꽃 그림자

서쪽으로 기어가네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모든 종교와 말들을 다 떠나니

거기 자두꽃과

벚꽃이 피었구나


난후꼬-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태어나서 목욕하고

죽어서 목욕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싸,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시
-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

하지만, 하지만...


이싸, 어린 두 딸을 잃고, 아들마저 죽은 뒤 쓴 시
-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