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 시 모음집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모리다케-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미안하네, 나방이여
난 너에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불을 끄는 수밖에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나비 한 마리 돌 위에 앉아 졸고 있다
어쩌면 너의 슬픈 인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
시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달팽이, 뿔 하나는 길고
뿔 하나는 짧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돌아눕고 싶으니
자리 좀 비켜 주게,
귀뚜라미여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새해의 첫날,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그냥 인간일 뿐
시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소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높은 스님께서
가을 들판에서
똥 누고 계신다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불을 피우게
그러면 내가 멋진 걸 보여 줄 테니,
눈뭉치!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어부의 오두막
바구니에 담긴 새우들 속에
귀뚜라미 몇 마리!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우네
소세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목욕할 물을
버릴 곳이 없다
온통 벌레들 울음소리
오니츠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올빼미여,
얼굴 좀 펴게나
이건 봄비가 아닌가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팽이 얼굴을 자세히 보니
너도
부처를 닮았구나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첫눈 위에
오줌을 눈 자는
대체 누구인가?
기가쿠-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번개에
한 순간 드러나는
마른 강바닥!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꺾어도 후회가 되고
꺾지 않아도 후회가 되는
제비꽃
나오조-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어서 나와, 반딧불아
난 방문을 잠그고
외출할 거야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두 그루의 매화, 얼마나 보기 좋은가
하나는 일찍 피고
하나는 늦게 피고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파리가 있고
부처가 있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내가 경전을 읽고 있는 사이
나팔꽃은
최선을 다해 피었구나
쿄로쿠-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빛이 너무 밝아
재떨이를 비울
어둔 구석이 없다
후교쿠-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밤은 길고
나는 누워서
천년 후를 생각하네
시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밀물에
발끝으로 서 있는
나비!
치요니-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너의 본래면목은
무엇이니,
눈사람아?
소세키-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못통 속의 못들
모두가 운 좋게
굽어 있다
호사이-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천둥 번개가 쳐도
나는 젓가락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뻐꾸기가 울 때는...
무초-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나는 외출하니
맘 놓고 사랑을 나누게나
파리여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오늘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나이가
일흔 두셋쯤 되는
쇼우-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낮에는 모기들을
부처님이
등 뒤에 숨겨 주고 있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승려와 파리와
모기가
내 앞을 지나갔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국화를 기르는 사람들,
당신들은
국화의 노예들이오!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봄날, 내 오두막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있다
소도-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오래된 연못
개구리
풍덩!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논 주인이
허수아비 안부를 물으러
논에 나갔다 돌아오네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특별한 재주가 없으니
난 잠이나 잘란다
이 시끄러운 새들아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다
잠들지 않으면
더욱 춥다
시코-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반딧불이 반짝이며 날아가자
저길 봐하고 소리칠 뻔했다
나 혼자인데도
다이기-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무더운 날에
나는 마음을 정했다
승려가 되기로
토세이-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 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나비가 사라지자
비로소 내 혼이
내게로 돌아왔다
와후-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지금부터는
모든 것이 남는 것이다
저 하늘까지도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타다토모-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연꽃 잎사귀에 소변을 보니
사리가
알알이 맺히네
시코-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뚱뚱하게 살찐 중 하나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온다
기도문을 외면서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구경 하는 사람들에게
구름이 잠시
쉴 틈을 주네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새벽이 밝아오면
반딧불도
한낱 벌레일 뿐!
아온-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벼룩을 눌러 죽이며
입으로는 말하네
나무아미타불!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저무는 가을,
거지가 내 옷을
오랫동안 쳐다보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반딧불 하나가
내 소매 위로 기어오른다
그래, 나는 풀잎이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언 붓을 녹이려다
등잔에
붓 끝을 태웠다
타이로-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재주가 없으니
죄 지은 것 또한 없다
어느 겨울날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눈이 하나뿐인 사람이
한참동안
나를 쳐다보네
호사이-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으려다
미쳐 버렸네
시메이-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첫눈을 보고 나서
얼굴을
씻었네
에츠진-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새벽에 핀 이꽃들
나는 내가 보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이
신의 얼굴을 보았다
바쇼-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사립문에
자물쇠 대신
달팽이를 얹어 놓았다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반딧불을 쫓는 이들에게
반딧불이
불을 비춰 주네
오에마루-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대문 앞에 난
단정한 노란 구멍,
누가 눈 위에 오줌을 누었지?
이싸-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달이 동쪽으로 옮겨가자
꽃 그림자
서쪽으로 기어가네
부손-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모든 종교와 말들을 다 떠나니
거기 자두꽃과
벚꽃이 피었구나
난후꼬-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태어나서 목욕하고
죽어서 목욕하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싸,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시
-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
하지만, 하지만...
이싸, 어린 두 딸을 잃고, 아들마저 죽은 뒤 쓴 시
- 하이쿠 시 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류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