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가마솥 빵꽃

여람 2016. 3. 12. 21:29



가마솥 빵꽃

 

 

 


원춘옥





가마솥 하나 길가로 나왔다

누구의 집에서 옮겨온 것일까


한때 가족의 차진밥을 지어내며

기름진 대접을 받았던 몸

단단한 생이 밀린 자리 녹꽃이 피었다

빈 자궁으로 허공만 움켜쥐다 새 주인을 만났다

무엇이라도 담아야 직성이 풀리는, 일이 체질인 그녀

이른 계절을 끌어당겨 부지런히 반죽을 한다

흙과 퇴비의 조화는 그녀만의 비법

고슬고슬한 잎 위에 동그랗게 반죽을 안쳤다

낮볕에 제대로 부풀어 오른 꽃들

한 솥 가득 노랗게 익어간다

거리 가득 단내가 번진다

바람이 삐끼로 나서자,

거리를 지나는 이들 코를 들이댄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사람들

향기를 베어 문 입가에 웃음이 돈다

솜씨를 잃지 않은 대박난 봄


열 두벌 수저를 챙기던, 무쇠같던 외숙모

종일 찐빵을 쪄내고 있다



      2014  미래시학 여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