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엽편소설] 모나리자의 필살기 ( 1 )

여람 2011. 4. 6. 18:20

 

 

 

 

 

 

 

[1인칭 엽편소설] 모나리자의 필살기 ( 1 )

 

 

                         원춘옥 

     

 

“혹시 여기에 있던 핸드폰 못 봤어”

“어떡하지... 이번 차를 놓치면 20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준환아, 어젯밤에 게임 한다고 어디다 나둔 것 아냐'

'‘나원참, 엄마는 생사람 잡고 계시네’

“당신은 하루라도 뭘 찾지 않는 날이 없어, 미리 준비해 놓으면 그런 일이 없잖아”

 

졸지에 의심이 많고 골치 아픈 사람이 되어 버렸다. 070전화로 010.2929,xxxx를 눌러보니 핸드백에서 ‘윙윙’ 사납게 울린다. 핸드폰이 무사히 있음을 확인한 후 가슴의 단추도 채우지 못하고 총알같이 버스 정류장으로 뛰었다. 이미 도착해 있는 버스는 하나 둘 사람들을 삼키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뛰었지만 걸음은 기아가 풀린 자전거처럼 헛바퀴를 돌릴 뿐이었다.

막 떠나려는 버스의 엉덩이를 있는 힘을 다해 두들기니 떠나려던 차가 멈추었다. 겨우 한 발을 올려놓고 씩씩거리며 연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버스에 올랐다. 죽기 살기로 뛰어오는 아줌마의 모습이 안쓰러워 차를 세웠다는 듯 버스기사 아저씨는 한참을 쳐다보다가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버스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아차, 어제 입었던 외투 주머니에 넣어놓고 그냥 뛰어왔던 것이다. 뒤죽박죽이 된 가방을 뒤져 신용카드를 대니 “이 카드는 사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라고 냉정하게 한 마디를 뱉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환승을 해야 하는데...날아갈 천원이 백 만원처럼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투입구에 천 원을 넣고 얼른 의자 손잡이를 확보했다, ‘콩닥 콩닥’ 거친 숨소리는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여러 번 심호흡을 했지만 계속 망치질을 해댔다. 누가 들을세라 이를 꽉 다물고 슬쩍 차 안을 살펴보니 맨 뒤에 젊은 학생과 나이 먹은 아저씨 사이에 빈자리가 있었다.

 

‘이 아침에 왠 행운이람. 후후 !’

 

회심의 미소가 돌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뚫고 목표지점까지 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한 정류장을 지났는데 여전히 비어있는 자리를 그대로 놓아두고 망설이는 것은 용기가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부축이며 사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보며 그 자리를 넘보고 있지마는 그럴 용기가 없어 미루고 있다는 것을 출근 경력 15년이 넘은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에도 철칙이 있다. 첫째는 눈치를 살피지 않고, 남들보다 빠르게 앉아야 한다. 놓치면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리는 사람이 잠시 서서 버스가 정차하기를 기다릴 때도 방심하면 다른 사람이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리를 빼앗기지 않게 몸의 일부분으로 막아야 한다. 가끔 얌체족에게 다 확보해 놓은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한 번 앉은 자리는 앞에 누가 있든지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핸드백 외에 가벼운 물건이라도 쇼핑백에 넣어 가지고 타야만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노약자가 앞에 있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짐이라도 들고 있으면 자리양보를 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무거운 물건을 들어 양보를 할 수 없으니 그렇게 이해해 달라는 표시이다.

그리고 빈자리가 없을 때는 누가 내릴 것인지 직감적으로 알아야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우선 대학생이나 중고생이 앉아 있으면, 몇 정류장 가지 않아 내리는 사람들이다. 가까운 곳에 학교가 있기 때문에 빨리 내리는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가방의 손잡이를 모아 쥐고 자꾸 벨을 확인하는 사람도 곧 내릴 사람들이다. ‘후후’ 그러다가 낭패를 본 일도 있었다. 카드를 꺼내 만지작거리는 사람 앞에서 손잡이를 확보한 후 기다렸지만 꼼짝도 않는 것이었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이번에는 내리겠지’ 하면서 별렀지만 내가 내리는 정류장까지 꼼짝하지 않던 사람도 있었다.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뒤통수를 한 번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어깨를 꼿꼿이 세우고 팔꿈치에 각을 세운 후,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지나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기도 전에 힘이 다 빠져버린다. 뒤꿈치에 닿아 아팠는지 잠깐 뒤를 돌아보며 인상을 쓰는 아가씨의 시선을 무시하고 모르는 척 지나갔다. 갑자기 어제 저녁에  아들이 말이 생각났다.

 

“엄마 제발 다른 아줌마처럼 버스나 지하철 타면 자리보고 뛰어가지 말어”

“그런 아줌마들 보면 짜증나, 엄마는 안 그렇지?”

“알았어”

 

하지만 아들에게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너도 내 나이 되어봐. 이놈아, 누가 교양 있고 고상한 척 할 줄 몰라서 그러는 줄 알아. 나도 예전엔 너처럼 그런 아줌마 싫다고 자리 비어 있어도 새로 산 하이힐 신고 몇 시간이나 버티고 서서 간 적도 있었어. 세월이 나를 그렇게 만든 거야, 다 너희들 키우느라고 이렇게 망가진 거야 알겠어?”

 

아들의 말이 내심 걸렸지만 난 자리로 향해 갔다. 내리려면 또 한바탕 치러야 할 길이지만 우선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일차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겨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그 자리를 확보하니 한숨이 나왔다

 

“휴~ ”

 

아차, ‘휴’ 소리가 너무 컸나보다. 얼른 목을 집어놓고 거위 눈을 하고 주위를 살피니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출근전쟁에 지쳐서인지 저마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옆자리의 아저씨가 자꾸 힐끔힐끔 쳐다본다.

 

‘이 아저씨가 아침부터 왠 사냥이야. 이쁜 것은 알아가지고... 그럴 시간 있으면 신문이나 보쇼'

‘ 이구 나이 먹으나 젊으나 그저....앙’

' 아직도 다른 사람들은 30대 초반일 줄 알아‘

‘ 반반하게 생겼어야 눈길 한 번 주지 흥'

 

좌석을 확보한 난 이제 뒤죽박죽 된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후 얼마 전 출판기념회를 한 사람이 준 시집을 꺼냈다. 바빠서 가방에 처박았던 시집을 꺼낸 것은 시간을 메우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옆자리 남자의 이상한 시선을 끊기 위한 의도의 뜻도 다분히 숨겨져 있었다.

시집의 첫 장부터 돈 냄새가 풀풀 풍겼다. 금박으로 제목을 썼고 그 다음 페이지는 본인의 프로필이 빽빽하게 차있었다. 모 유명 대학 출신이며 정부요처에 근무했으며 현직은... 누가 봐도 화려한 경력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프로필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시를 쓰는 데 무슨 프로필이 필요한 것인지... 지식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그 지식을 알릴 길이 없으니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연다.

갑자기 시를 읽을 마음이 없어졌지만 옆의 음침한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서 그래도 뒤적이지 않을 수 없다. ‘연잎의 사랑’, ‘그리움의 강’ 등 관념어로, 한자어로 써내려간 문장들을 눈에 넣다 보니 졸음이 왔다. 몇 장을 넘기니 어제 인터넷 카페에서 서핑을 하다고 밤을 소진하고 새벽 세 시에 잠들어서 미처 채우지 못한 잠이 엄습해 왔다. 이를 악물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잠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다. 몇 번이고 책은 손에서 떨어질 위기를 넘겼다. 그럴 때 마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주위를 살폈지만 다행히 눈치 챈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왠지 옆에 있는 남자가 가시처럼 껄끄러웠다.

 

‘저 인간이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낄낄거릴까...’

 

그 후에도 몇 번이나 그러다가 겨우 환승 후 회사 앞을 놓치지 않고 내릴 수 있었다. 내려서 시간을 보니 아직 삼 분 전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가면 지각을 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엘리베이터는 사람들을 층마다 토해내느라 ‘삑삑’ 소리를 내며 헐떡이고 있었다. 서서히 일 층으로 내려온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저절로 엘리베이터 구석으로 몰렸다. ‘뒤우뚱’ 거리며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거울을 보는 순간 아뿔사! 멍하니 서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모나리자. 모나리자...’

 

명화 속의 한 여인이 핏기 잃은 얼굴을 하고 하얗게 서 있었다. 화운데이션을 바르고 콤펙트만 한 후 핸드폰을 찾느라고 부산을 떨다가 그만 립스틱과 눈썹을 그리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원래 눈썹 숱도 적은데 하얗게 뒤집어 썼으니...

4층에서 잠시 멈췄던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버스 옆 자리에서 힐끔 힐끔하던 남자가 떠올랐다.

 

“이구, 상판떼기 하구는 입술이랑 눈썹이랑 그리지...시집을 읽는다구”

“얘라 시는 무슨 시...꼬락서니 좀 봐라 봐”

 

마구 난사를 했을 생각을 하니 하드웨어가 갑자기 에러부호를 날린다.

 

“아 ,아! 못말려 정말...아”

 

시시 때때로 일어나는 건망증에 허둥대는 모습과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는 아줌마병은 어느새 불치병이 되어 버렸다. 그런 모습을 외면하고 싶고 부끄러워하던 시간도 지나 이제는 철면피가 되었다.

20대에 버스 안에서 만났던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가 허연 부인이 생각이 났다.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던 모습을 보며 나도 저 여인처럼 아름답고 우아하게 노후를 꾸리리라 생각했던 일이 있었다. 시끌벅적하게 주의도 살필 줄 모르고 교양도 없는 그런 아줌마로 살지 않겠다던 의지는 무너지고 뻔뻔한 아줌마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1층 화장실에 들어가 얼굴을 정리하고 나왔다. 닫히려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던지니 다물다만 입을 열은 엘리베이터는 단숨에 나를 끌어안고 4층에 내려놓았다. 9시를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딸랑거리는 문을 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