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람노트

[스크랩] 다음뉴스/문학저널21(daum news)에 실린 詩評

여람 2010. 8. 31. 08:40

            섬세한 어휘 속에 가둔 시심 원춘옥 시인
김광한
▲ 원춘옥 시인     © 김광한
활동적이면서 매우 외형적인 것 같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척 섬세하고 꼼꼼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견상 치밀하면서 조직적인 사람인 것 같지만 그 반대로 생각과 행동이 허술하고 빈틈이 많은 사람이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그렇다. 온갖 치장을 해서 아름답게 꾸민 여성이 막상 그 집에 들어가 보면 여간 질서없이 늘어놓고 사는 것을 보면서 겉과 속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래서 외유내강(外柔內剛)외허내실(外虛內實)이란 말로 이를 경계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사교적이고 친절한 것 같지만 일을 함에서 틀림이 없고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 여람 원춘옥 시인이 그렇다. 조선조 말에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린 조선 미인도(美人圖)에 나오는 여인처럼 원춘옥 시인의 용모는 그 얼굴의 선이 부드럽고 윤곽이 비교적 또렷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용모와는 달리 남들에게 친절하고 겸손해서 일견 시적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없는 면이 있으나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용모와 행동거지가 다소 차이가 남을 알 수가 있다. 우선 그 치밀한 시를 씀에서 구성과 마치 현미경 안에 들어 있는 아주 미세한 생물들의 움직임처럼 작은 어휘들이 활발하고 생동감 있게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대저(大抵) 시를 씀에서 처음 시도할 때는 매우 크고 화려하게 시작하지만 점차 작아지고 초라해져 마침내 그 뜻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그 의미가 대수롭지 않게 보이다가 몇 번 읽다 보면 그 시의 의미가 점점 커져 눈앞을 현란하게 만드는 그런 시가 있다. 원춘옥 시인이 쓴 일련의 시들이 그렇다.

마지막으로 건네준
종이꽃 속에
가냘픈 당신을 묻고
세월을 가두고 말았지요

시인의 내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이 어휘의 선택에 큰 작용을 한 느낌을 주는 시이다. "마지막으로 건네준 종이 꽃"이란 말은 여느 시인들도 흔히 사용하지만 바로 그 뒷부분의 가냘픈 당신을 묻고 세월을 가둔다는 것은 얼핏 시인만이 아는 현실의 어느 이야기도 될 수가 있고 시어 자체가 그리 요란하지 않은 평범한 것이지만 무언가 제시하는 은유와 비유, 그리고 사실과 추상의 어느 접점을 절묘하게 연결 시켜 놓고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퀴즈를 풀게 하는 재미를 주고 있다.

 비교적 쉬운 용어로 고급스런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시적 반응을 자연스럽게 형성케 한 원춘옥 시인의 꼼꼼함이 엿보인다. 물봉숭아 꽃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 여과 없이 흘러나와 한 편의 시가 되었다. 봉숭아면 봉숭아이지 물봉숭아를 굳이 선택한 것 역시 시인의 섬세함을 말해주는 듯하다.

7~8월에 자주빛깔의 꽃을 피우게 하고 비교적 큰 키의 봉숭아, 후회가 자라서 덤불을 덮는 꽃이 되었고, 눈물은 번져 가슴을 찌르는 꽃이 되었다, 사실과 추상, 그리고 현실과 이상, 생각이 남긴 그 모호함 속에 시인의 진정한 마음이 깃들여있는 시이다. 쉬운 우리말로 엮어낸 모범답안 같은 시이다. 


 
물봉선(鳳仙)
        

마지막으로 건네준 
종이꽃 속에 
가냘픈 당신을 묻고
세월을 가두고 말았지요  

후회는 자라 
덤불을 덮는 꽃이 되었고
눈물은 번져       

가슴을 찌르는 꽃이 되었습니다 
찰나(刹那)의 인연으로 접었던
당신의 창백한 입술위에  

그리움이 자꾸 
홍자색(紅紫色)을 칠합니다           


달팽이            
  

빳빳한 더듬이는 
원초의 성을 기웃거리는데
귀를 닫아버린
시간을 밀착한 체
부피를 감당하기 힘든
태고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
느릿 느릿
태엽이 풀린다

점액질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말랑한 순수를 다치지 않고
무사히 안착할
그의 집은 너무 멀다

빛을 느낄 뿐
볕에 웅크린 그의 몸은
아직은 초라하다

달팽이가 기어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문득 우리들의 삶을 비견한 생체학적인 시속에 그만이 가진 생명에 대한 자상함이 녹아있는 시이다. 달팽이는 점액을 내뿜으면서 그것을 철길처럼 미끄러지면서 간다. 그래서 느리고 둔하다. 그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아무래도 먼 것 같은데 달팽이의 움직임이 너무 안쓰러워 시인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함부로 움직이는 더듬이 같으나 더듬이가 향하는 지점은 원초(原初)의 성(城)이다. 그 성은 달팽이밖에 모른다. 갈망의 지점을 향해 기어가는 달팽이에게 무언의 힘을 실어주는 시인의 자애로운 마음이 들어 있어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시이다.

현재와 과거, 달팽이의 안착점(安着點), 말랑한 순수 등 달팽이 하나를 놓고 여러 화두를 던진 시인의 사념이 무척 현란하다. 어쩌면 우리의 삶 역시 욕망이란 더듬이를 갖고 한없이 돌진하는 만용의 행위를 아무런 느낌 없이 진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깊은 메시지를 받는다.


풋잠

또도독
활자들이 흰자위를 보이며 소멸해갈 때
유리창을 붙잡고 긴 음표(音標)를 그리던 빗방울은
20대의 탄력으로 버티다가 키를 낮추더니
스르르 형체를 감춘다

또도독
알레그로 아다지오 포르테
종이위엔 어지럽게 음악기호들이 나뒹굴고
번짐위에 앉은 까만 똥만 눈을 껌벅거리며
미아(迷兒)가 되어 앉아 있다

또도독
오선지를 벗어난 감꽃들을 주워
퍼즐을 맞추어 가면
중첩된 종이속 채도 낮아진 이름들
스타카토  발소리를 내며
텍스트 안으로 들어온다


어찌 보면 환타지오와 같은 시인 것 같지만 시인의 의식(意識)의 흐름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책을 보다가, 아니면 텔레비전 화면을 한참 동안 대하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었을 때 활자들이 거꾸로 곤두서기도 하고 때로는 그 속도가 빠르고 매우 느리고 평온하게 그리고 강하게 음악의 음률처럼 영혼의 빈틈으로 전해진다. 작고한 작가 최상규 씨의 작품 "포인트"에 등장하는 용어들이 짧은 시안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최 작가의 글에서는 활자이지만 원춘옥 시인의 시에서는 음표가 된다. 그러나 활자건 음표건 간에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추상명사들인 것만은 분명하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계간 문학세계에서 시 부문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세계 시 낭송협회회원으로 있고, 다 선제 먹그림 회원이다.

현재 서예 한문교실을 운용하고 있다. 젊은 여류 시인이 모든 것을 인터넷에 의존하고 한자를 경원하는 세대에 한문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학원을 열었다는 것만도 예삿일이 아니다.

여람(余藍)이 그의 아호인데 원래 남(藍)이란 한자는 우리말 "쪽"이란 일년생 풀이다.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 청출어람(靑出於藍)에서 비롯된 것이 남(藍)인데 스승보다 더 뛰어난 실력과 평판을 말한다. 학문하는 자세를 일컬었다. 푸른 것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에서 비롯됐지만 물보다 더 차다는 어의를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후학들을 지도함에서 학문을 하는 자세의 반듯함을 기려 그의 아호를 이렇게 사용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본 코너 (시인의향기)에 소개될 촉망되고 훌륭한 시인을 문화저널21 편집국 (02-3667-4555)또는 이메일(master@mhj21.com">master@mhj21.com  /  mh0100@naver.com">mh0100@naver.com)으로 추천 하여주시길 바랍니다. 

☞ 삶의 향기가 가득한 문화예술전문분야의 선두주자“문화저널21”
[저작권자(c)문화저널21 &
www.mhj21.com.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문화저널21 www.mhj21.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저널21 / 편집위원,한국문인협회회원
예쁜 미소의 시인님... 최영옥 2008/09/26 [11:09] 수정 삭제
  마지막으로 건네준
종이꽃 속에
가냘픈 당신을 묻고
세월을 가두고 말았지요

원춘옥시인님. 다정한 눈빛의 시인님을 기억합니다. 김광한선생님의 평처럼 다정한 모습과는 또 다른 깊고 깊은 시인님의 시심에 젖을 때면 마음 한없이 깊은 사색에 빠져 듭니다. 가을날에 수작의 작품 많이 쓰시고요. 늘 예쁜 미소 변함없으시기 바랍니다.
모습처럼~ 소연/김태순 2008/09/26 [17:09] 수정 삭제
  문인 모임에서 몇 번을 뵈었지만
보이는 모습처럼 시의 빛깔도 비슷해서
혼자 미소지어 봅니다~^^
원시인님~!
활동하시는 모습도 부럽구요~
곱게 써 내려가는 시심도 부럽습니다~
건필 하셔서 건승의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섬세하고 정감있는 그러나 지도자 적인 시인. 이현실 2008/09/26 [20:09] 수정 삭제
  원춘옥 시인, 그의 시는 눈을 감고 있어도 한 폭의 고운 수채화를 연상케하는 그림으로 각인된다. 오리지널 서울사람이 귀한 서울에서 그녀는 온전한 서울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남다르게 야생화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것은 시골 외갓집을 오가면서 보고 느꼈던 자연 사랑이다. 작은 풀잎 하나, 바람에 흔들리는 이름모를 들꽃 하나에도 생명의 외경심을 갖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가슴에 담고 있었던 시인만의 감성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의 <물봉선>과<달팽이>는 모두 자연사랑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애정표현이다. 사르르 <풋잠>이 들다 눈을 뜨면 또 다시 텍스트 안으로 들어오는 저 풋것들. 그것마저 모두 껴안고 있는 그녀는 천상 시인이다.
감사합니다 원춘옥 2008/09/27 [09:09] 수정 삭제
  언제나 곁을 지켜주시는 들꽃같은 정겨운 분들이 계서 제 삶은 탄력을 받습니다.최영옥 이현실 김태순시인님의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아름다움이... 일출 정동진 2008/09/28 [10:09] 수정 삭제
  평소의 느낌 보다 더욱 아름다움이 손에잡힐 것 같네요..
일송정 선생님의 정확한 평론, 원춘옥 선생님의 아름다운 글, 이현실 선생님의 멋잇는 추임새
최영옥, 김태순 선생님의 격려 말씀이 원선생님의 멋진 글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네요.

건강 유의 하시고 건필 하시고 건승 하셔서 문단의 대들보로 우뚝 서시길...
물봉선 아래 달팽이가 느린 하품을 하니 풋잠이 스르르~ 보각해 2008/09/28 [23:09] 수정 삭제
  시가 너무 예뻐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읽고 싶어요. 유리창을 닦고 내다보는 풍경처럼 깨끗해지는 마음입니다. 멋진 시어 많이 줍기를~
어느 샌가 빠져드는 듯한 시와 향기 독자 2008/10/05 [19:10] 수정 삭제
  원 시인 님의 시를 읽다보면 시에서 향기와 바람 나무사이로 갈라져 오는 햇살과 같이 시인님의 따뜻한 영혼과 순수가 느껴집니다..
가을 햇볕에 반짝 반짝 빛나는 붉은 석류 속에 알알이 박힌 루비처럼~~ 해국 서동애 2008/10/08 [19:10] 수정 삭제
  얼굴을 떠올리며 참 따뜻한 정이 옹달샘 처럼 쉼 없이 나오는
원시인님!
늘 싱그러운 좋은 작품으로 마음 설레게 하는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부러워요.
또 좋은 작품 기대 합니다.
마냥 행복합니다 원춘옥 2008/10/11 [21:10] 수정 삭제
  앗,그 사이에 여러분이 다녀가셨네요.부족한 글에 머물러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향기 짙은 말씀들을 책갈피에 끼워두고, 추억처럼 펼쳐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냥 행복합니다.

메모 : b